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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핔 : [북한군일화]12.제4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북한 군사고문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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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7 13:52:10 | 조회 (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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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일화]12.제4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북한 군사고문단 (2)

  
[북한군일화]12.제4차 중동전쟁에서 활약한 북한 군사고문단 (2)
 
 
해금강
기사입력: 2017/06/17 [04:20]  최종편집: ⓒ 자주시보
 
 

4차 중동전쟁에 적용된 북한식 전법의 놀라운 위력

 

4차 중동전쟁에 적용된 애급군의 전법은 본질에 있어서 북한군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전법이다. 그러기에 4차 중동전쟁은 군사전략전술적인 측면에서는 북한과 이스라엘과의 대결장이며 북한군의 전략전술이 이스라엘군의 전략전술을 완패시킨 전쟁이다.
4차 중동전쟁을 대표하는 몇 가지 전법을 보기로 하자.

 

▲ 2017년 5월 17일 세계 물의 날 특집: 물을 무기로 이용한 전쟁사란 제목의 글이 국방홍보원에 소개되었는데 그 글에서 제4차중동전쟁의 소방차를 동원한 이스라엘 모래둑 허무는 전술을 세계전쟁사에서 높이 평가하는 창의전 전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법을 북의 고문단이 만들었다고 한다.     자주시보

 

▲ 이스라엘은 모래둑을 허무는데 최소 2일을 걸릴 것으로 보고 증원부대를 배치해두었는데 이집트는 소방차를 이용해 단 9시간만에 모래둑을 허물고 부교를 이용 시나이반도로 진출하였다. 이스라엘은 끔찍한 패배를 면치 못했다.     자주시보

 

- 소방차로 모래 둑을 허무는 전술


공격하는 전차와 보병부대의 가장 큰 장애는 모래 둑과 갯벌이다. 우선 이것을 파괴할 만한 재래식폭탄도 없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폭이 수십m에 달하는 거대한 모래 둑을 운하기슭에 쌓아 바흐레브선을 구축한 다음 '금성철벽'이라고 자처했다. 소련군사고문단도 모래 둑 돌파를 놓고 고심했지만 끝내 방도를 찾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런데 북한 군사고문단의 지도 밑에 한 애급군 참모가 어렸을 때 모래무지를 물총을 쏘아 허물던 생각으로부터 이 방안을 제기한다. 그러나 인차 총참모부의 반대에 부딪친다. 이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지로 보여준 것 역시 북한 군사고문단성원들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운하에 구축한 것과 꼭 같은 모래 둑을 쌓고 여기에 소방차로 물을 쏘면 모래 둑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였다. 그리하여 하나의 돌파구를 개척하는데 소방차 6대를 3시간정도 동원하면 된다는 과학적인 수치를 산출해 내고 그에 따라 특공대의 사전진입과 물총을 장비한 선견대의 투입, 기본부대의 진출로 된 수에즈운하돌파전법을 수립한다.


더욱이 이 전법은 운하에 무진장한 바닷물을 원천으로 하기 때문에 물총을 쏘는데 필요한 엔진기름만 얼마간 있으면 된다. 특별한 무기장비가 필요치 않으므로 아주 효과적이고 비밀준수에도 유리했다. 실지로 전쟁직전에 수십대의 민간소방차와 물총들이 수에즈운하계선에 나타났지만 이스라엘군은 이에 대하여 전혀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 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다련장로켓포(방사포), 이집트도 이런 소련의 다련장로켓포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수에즈 운하 방어선인 바레브선을 타격할 때 이런 식으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주시보

 

▲ 제4차 중동전쟁에서 포격을 위해 기동하고 있는 다련장로켓포 차량     자주시보

 

▲ 이집트군의 포병집중사격으로 제4차중동전쟁이 시작되었다.  사진은 곡사포집중사격

 

- 포병집중이용전술


북한의 특기가 바로 포병집중이용전술이다. 특히 방사포를 잘 활용한다. 그래서 북한은 당시 애급군이 장비하고 있던 대구경포들과 방사포들을 모두 돌파지역에 집중시키고 1km당 250문 이상의 포화력을 조성했다.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렇게 많은 포들을 집중시킨 실례는 오직 4차 중동전쟁 하나일 것이다. 포들은 사거리와 위력에 따라 층층이 배치하고 임무를 구체적으로 주어 수에즈운하에 굴설된 바흐레브선을 일격에 격파할 수 있게 하였으며 이스라엘군 군인들을 정신적으로 위압시켜 전투의욕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결국 10월 6일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바흐레브선은 형체가 없어지며 이스라엘군은 애급군 주력이 운하를 돌파할 때까지도 아무런 조직적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것은 미국과 서방을 공포에 떨게 하였고 애급과 이스라엘에는 진짜 전쟁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어 준 좋은 교범으로 되었다.

 

▲ 제4차중동전쟁(욤 키푸르전쟁) SA-6게인플 지대공 미사일과 그 유도 레이더차량, 북 군사고문단은 이런 레이더의 주파수를 변경하여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전혀 알아차릴 수 없게 대공미사일을 쏘아 모조리 격추시켰다.     자주시보

  

- 전무후무한 전자장애조성전술


3차 중동전쟁에서 애급군이 6일만에 처참하게 패한 원인의 하나는 전자전준비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이스라엘의 전자전에 공략당한 것이다. 당시 소련의 전자기술이 그리 높지 못했으므로 애급군의 전자전능력은 이스라엘보다 한참 뒤떨어졌다. 이러한 실정에서 애급군은 북한 군사고문단의 통신전문가들의 지도 밑에 그동안 관심밖에 두였던 낡은 대출력통신기재들을 모두 장애기로 개조하고 육군과 공군이 장비한 모든 통신기재들이 통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군의 통신도청과 장애를 조성할 수 있게 준비시켰다. 동시에 이스라엘군의 무선장비들에 대한 정보수집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어 이스라엘군의 지휘부와 비행기들에 장비된 통신기재, 장애기들을 모두 장악하고 대책을 세웠다. 특히 주요 대공미사일시스템인 SA-4와 SA-6의 유도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조하여 이스라엘의 전자전에 관계없이 정확한 명중사격이 가능하게 한 것이 매우 주목된다.


결국 전쟁이 터지자 시나이반도는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 보지 못한 최대의 전자장애지역으로 돌변하여 이스라엘군의 지휘시스템을 완전 마비시켜 놓았으며 이스라엘군 전투기들은 전혀 생각지 못한 유도방식으로 몰입하는 애급군의 대공미사일을 피하지 못해 연이어 격추되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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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거리가 75km까지 가는 SA-4 지대공 미사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고사포를 피해 고도를 올리면 이 SA-4의 먹이감이 되었다.     자주시보

 

▲ 제4차중동전쟁 당시 카이로를 방어했던 핵심 수단, SA-6 지대공미사일, SA-4의 요격을 피하느라 혼비백산에 빠진 이스라엘 전투기들들 최종적으로 소멸했던 가장 정확하고 위력한 지대공 미사일이었다. 당시 이집트 방공망의 핵심 수단이 이 SA-6 미사일이었다.     자주시보

 

▲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대공미사일에 격추된 이스라엘 전투기 꼬리 날개     자주시보

 

- 다층으로 구축한 수도항공방어시스템


베트남전쟁과 이전의 중동전쟁에서는 대공무기들이 거의 독단적으로 운용되었고 설사 협동한다고 하어도 연관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4차 중동전쟁은 유사한 사명을 가진 서로 다른 제원의 무기들을 잘 어울려 쓰면 상상 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실물로 입증하였다.


애급군은 공군의 준비상태가 이스라엘공군보다 못한 조건에서 공군의 대부분을 북한 군사고문단의 지휘 밑에서 이스라엘의 전략적 대상에 대한 공습과 이스라엘군 공군비행장에 대한 타격에 집중이용하면서 항공방어는 주로 대공미사일과 소구경고사포로 보장하였다. 특히 수도항공방어가 가지는 의의로부터 다층으로 된 항공방어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이 항공방어시스템에서 기본역량은 반능동유도방식의 중거리대공미사일 SA-6이다. 그러므로 다른 대공미사일들과 고사포들은 보조적인 차원에서 SA-6과 협동하게 하였다. 먼저 앞 계선에서 소구경고사포로 이스라엘군 전투기들을 위협하면 바빠난 이스라엘군 전투기들은 중고공으로 상승한다. 이것을 노리는 것이 다음 계선의 SA-4이다. 대체로 여기서 30%이상이 격추된다. 이 구간을 가까스로 벗어난 이스라엘 비행사들은 벌써 제 정신이 아니므로 자기가 SA-6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사포부터 대공미사일까지 모든 반항공지휘는 북한 군사고문단의 반항공담당교관들의 지도 밑에 통일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뒷 계선의 SA-6미사일들은 SA-4의 타격을 가까스로 벗어나 허둥대는 이스라엘군 전폭기들을 조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일단 이렇게 걸려들면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이스라엘 비행기의 나머지 60%이상이 격추된다. 이 죽음의 함정에서 운수 좋게 겨우 벗어 난 이스라엘 비행기들은 불과 몇 대 안되며 대체로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하거나 SA-6을 피하기 위해 저공으로 내려 오다가 최종적으로 SA-7의 좋은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래서 전쟁 전 기간 카이로에 단 한 개의 폭탄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 카이로 항공방어시스템은 북한 평양의 항공방어시스템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결국 평양 항공방어시스템의 효율성을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라고 자처하던 이스라엘 공군을 대상으로 카이로에서 검증한 셈이다.

 

▲ 제4차 중동전쟁에 참전한 북 조종사들     자주시보

 

▲ 제4차중동전쟁에서 이집트 미그-17 전투기들이 지상 이스라엘군 수송차량을 공격하여 불태워버리고 있다. 이 전투기들을 북 인민군 조종사들이 직접 지휘하였다고 한다. 미그-17을 가지고 지상공격기 역할을 완벽하게 대행케 한 것이다. 어떻게 저런 초저공 정밀타격 배짱과 조종실력을 키웠는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 이 사진은 1.23전투비행훈련에 참가한 두 여성비행사들이 조종하는 미그-17이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이 기종은 아음속추격기이지만, 지난날 제4차 중동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기종이다

 

- 미그-17을 근접지원기로 활용한 전법


미그-17은 1950년대에 항공방어용으로 만들어진 아음속  요격기이다. 베트남전쟁의 한 가지 교훈은 지상전에 대한 근접지원에 초음속전투기가 아무런 의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이 각각 A-10과 수호이-25를 개발장비하지만 북한이나 애급은 이런 호사를 바랄 수 없다. 더욱이 일단 수에즈운하를 돌파한 후에는 일선에서 공격하는 지상부대들에 대한 지원을 오직 비행대로밖에 할 수 없는데 당시 애급군에는 마땅한 근접지원기가 없었다.


그래서 애급에 파견된 북한 군사고문단의 공군담당교관들은 애급군에서 성능이 뒤 떨어진다고 밀어 놓은 미그-17을 근접지원기로 활용할 방안을 세운다. 근접지원기의 특징은 공중전보다 지상지원이 기본이므로 공대지화력이 매우 강해야 하며 거의 단독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전투기들의 공중지원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낡은 미그-17이 이 중대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는가 하고 모두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애급의 한 부대가 공격도중 이스라엘군의 방어에 부딪쳐 공격이 좌절됐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대책은 오직 하나 공중지원이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하는 수없이 북한 군사고문단의 한 비행사가 직접 미그-17을 단독으로 몰고 가서 이스라엘군의 방어진에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고 애급군의 공격을 보장한다.


여기서 너무도 놀라워 잘 이해 안 되는 점이 2가지 있다.


우선 원래 미그-17의 무장은 오직 기관포밖에 없다. 그런데 지상전의 근접지원에 활용하려면 적지 않은 폭탄과 로켓을 장비하어야 하고 기관포의 성능도 높아야 한다. 만일 북한이 이런 전법을 서슴없이 제기할 정도라면 북한군은 20년 전부터 장비한 미그-17을 이미 다 개조하고 비행사들도 공중전뿐만 아니라 근접지원도 할 수 있게 준비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초저공비행으로 단독임무를 수행한 그 비행사의 높은 담력과 비행술이다. 그 전투가 끝난 후 애급군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생각치 않은 미그-17의 지원에 대하여 모두 격찬했으며 비행사의 높은 비행술과 타격의 무자비성을 평가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전법이 있지만 대체로 다른데서 소개되었으므로 그만 약한다.

 

 

[↑제4차 중동전쟁, 욤 키푸르전쟁에서 이집트 특공대가 적진 깊숙이 진입하여 새거 미사일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탱크를 파괴하는 동영상]

 

 

5. 4차 중동전쟁과정에 북한 군사고문단이 찾은 교훈

 

북한 군사고문단이라고 하어 완성된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 아니므로 아무래도 부족한 측면도 있고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상대가 세계적으로 가장 두뇌가 뛰어나다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이므로 그들과의 전쟁은 고도의 두뇌전쟁인데 전쟁과정에 북한 군사고문단도 몇 가지 심중한 교훈을 찾게 된다. 이것은 지금 북한군의 전쟁준비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 상상을 뛰어 넘은 이스라엘 전차부대의 진출속도


초기 전쟁기획을 세울 때 북한 군사고문단과 애급군 총참모부는 수에즈운하 뒷 계선에 배치된 이스라엘 전차부대에 대하여 크게 관심 돌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 전차부대에는 전차만 있고 전차병들은 그로부터 수백km 떨어진 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3~4일 후에야 전차부대가 진출할 수 있다고 보고 기획을 세운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뜻밖에도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 밑에 전차병들을 수송기와 헬기로 즉시에 공수하며 다음 날에는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애급군에 반격을 가한다. 북한 군사고문단과 애급군이 사전에 7호발사관으로 무장한 특공대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어떤 후과가 초래되었겠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 제4차중동전쟁에서 7호발사관 즉, RPG로켓으로 이스라엘 탱크를 공격하는 이집트 특공대원, 로켓을 두 발이나 더 메고 있다.     자주시보

 

 

- 전쟁승패에 작용하는 위성정찰의 위력


다 알다시피 4차 중동전쟁과정에 애급군이 주도권을 상실한 기본 배경은 미국이 개입하면서 전쟁상황을 애급군 총참모부보다 더 신속히 이스라엘군에게 제공한데 있다. 북한 군사고문단으로서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고, 한번도 보지도 못한 것이므로 아무런 대책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이스라엘을 그런 방법으로, 그렇게 빨리 지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이 이때부터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지원방식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정찰위성의 보유와 정찰위성자료의 수집, 정찰위성장애에 대하여 각방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80년대 초부터 정찰위성자료를 수집하는 통로와 기술을 개척하며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여기에 사이버전력까지 투입하어 완전한 정찰위성정보수집 관련기술과 장애기술을 개발하게 된다.

 

▲ 이집트의 소련제 새거 대전차미사일과 7호발사관(RPG)에 박살난 이집트 전차     자주시보

 

- 조성된 불리한 상황에 당황하지 말고 끝까지 내미는 담력


이것은 정확히 말하여 북한 군사고문단의 오류가 아니라 애급군 총참모부의 돌이킬 수 없는 오류이다. 즉 애급군의 오류를 통해 북한군이 새기는 교훈이다.


미국의 정찰위성자료를 받은 후 이스라엘군이 정신을 차린다. 그리하여 애급군 부대들의 협동에서 나타난 빈 공간을 찾고 거기로 소련제 전차로 무장한 소규모 특공대를 투입하는 모험을 감행하는데 뜻밖에도 대성공한다. 이것을 한국전쟁에 비유하면 인천상륙작전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전쟁당시 1950년 9월에 이르러 북한은 사실상 전력을 다 소모한 상황이라면 4차 중동전쟁의 경우에는 애급군은 아직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전력이 충분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도 파악 못한 채 지레 겁을 먹은 애급군 총참모부가 퇴각명령을 내리는 통에 전쟁국면이 바뀐다. 그때 북한 군사고문단은 뒤 계선에 침입한 특공대는 내버려두고 진격하는 부대들은 끝까지 공격하어 전쟁목적을 달성하면 고립된 특공대는 저절로 소멸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애급군 총참모부는 북한 군사고문단의 의견을 듣지 않아 결국 전쟁을 망쳐먹는다. 그때 전선으로 진출하던 수많은 포병부대들과 전차부대들이 어처구니없는 손실을 당한다. 지어 멋모르고 계속 공격하던 한개 사단은 인접보장이 안되어 완전히 포위되고 한사람도 살아남지 못하는 비극까지 빚어진다. 지금은 그 골짜기에서는 해마다 애급과 미국,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군사연습을 진행하는 웃지 못 할 코미디가 연출된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오랫동안 시나이반도에서 특수전을 벌리다가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귀대한다.

  

▲ 카터의 중재와 담보로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 베긴 총리가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조약에 서명하였다. 우유부단한 이집트 수뇌부의 모습은 전쟁 중에도 이미 노출되었다.     자주시보

 


6. 4차 중동전쟁의 결말

 

미국의 지원 밑에 애급군을 반격하여 가까스로 전쟁 상황을 수습한 이스라엘이지만 전쟁초기에 너무도 처참하게 손실을 입어 더는 전쟁하기 어렵게 되였다. 애급도 전쟁과정에 상당한 손실을 입어 결국 애급과 이스라엘이 다 같은 상황에서 장기적인 담력전으로 이행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들의 상상을 뒤 집고 이스라엘이 먼저 항복하여 이스라엘군이 시나이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금도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애급의 전쟁목적이 달성된 셈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군사전문가들 속에서 논의되는 문제는 만일 소련 군사고문단이 애급군을 지도하였다면 이스라엘이 이처럼 빨리 항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이스라엘이 애급이 아니라 북한에 항복했다는 의미이다.

 

전쟁이 시작된 후에 이스라엘은 북한 군사고문단이 애급군을 지도하며 공군같은 경우에는 북한 비행사들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참전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결국 주적이 애급군이 아니라 북한군으로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북한 군사고문단이 있는 애급군과의 대결에서는 한두 개 작전에서 성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전쟁 전반에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차 간파한다. 이럴 때에는 한번 반격하여 애급군이 강타를 먹고 비칠거릴 때 제때에 전쟁을 결속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되는 것이다. 과연 유대인다운 영리한 판단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 2017년 4.25 조선인민군창건 85돌 기념 조선인민군 군종종합화력타격시위에서 방사포 일제사격으로 목표물이 초토화되는 모습     자주시보


7. 글을 마치며

 

1970년대 초 북한군의 모든 특기와 전법들이 가장 종합적으로 활용된 4차 중동전쟁은 이처럼 북한군이 전통적으로 내 세우는 사상정신적 우세와 전략전술적 우세가 전쟁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으며 순수 물질적인 측면만 강조하던 미국과 서방, 소련의 체면을 여지없이 구겨버린 사변이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세계각국의 평가가 서로 엇갈리며 특히 서방이 의도적으로 사실을 은폐왜곡하거나 폄하한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절대로 감출 수도, 왜곡할 수도 없다.

 

이것을 정확히 파악하면 자체로 개발한 무기들로 장비하고 자기 지도부와 체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일관된 사상으로 교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의 군 복무과정에 고도로 숙련된 북한군의 대상이 될 군대가 과연 어느 나라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대놓고 말한다면 미군과 유엔의 지원만 바라보는 한국군은 절대로 북한군의 상대가 안 된다. 

 

군사력에서 한국이 세계 11위이고 북한이 세계 23위라는 평가는 어리석은 자들의 개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현재 북한군의 실력이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1위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한참 뒤떨어 진다는 것이다. 또한 미군이나 중국군도 북한군과 감히 전쟁하지 못한다. 실력상 북한이 몰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가 마지막에 나 죽고 너 죽고 해 보자는 식으로 어떤 강수를 써서 워싱톤과 뉴욕, 베이징과 상하이, 나아가서 온 지구를 폐허로 만들지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가 전 세계에 대고 25년 전부터 하는 말을 그저 선전적, 체제유지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큰 낭패가 되며 반드시 새겨들어야 한다.

 

좋은 사례가 이번의 말레이시아 김정남 사건이다. 이 사건도 세계정상급으로 우뚝 솟은 북한군 전력의 뒷받침이 없으면 절대로 북한의 요구대로 마무리 될 수 없는 세계외교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다.

 

적국에 대한 전략적인 선제타격능력을 갖춘 군대가 진정한 군대라고 생각한다. 지금 북한 이상으로 적국에 대한 전략적인 선제타격능력을 갖춘 나라는 오직 미국과 중국, 러시아 3개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는 영국이나 프랑스도 북한보다 못하다. 결국 지금 북한군의 실지 전력이 세계 4위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3~5년 내에 서방의 폄하된 잣대로 평가해도 북한군의 전력은 반드시 세계 5위권 안에 꼭 든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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